에코인(回向院)에서의 스모경기

스모의 룰과 기술이 정비된 것은 헤이안 시대이고, 궁중의 의식인 삼도절(三度節)의 하나로서

세치에스모(節会相撲)가 행해지게 된 이후이다.

봉건시대의 스모는 무사의 신체단련하는 기술로서 넓게 행해졌다.

에도시대에는 신사 불사의 건립이나 중수(重修)를 위해 스모를 개최하여 관람객에게

기진을 권하는 간진스모가 각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막부(幕府)는 간진스모라 하더라도 치안을 이유로 간단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약 20여 년간 막부의 공식적인 간진스모의 허락이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허가를 받아 경기를 하는 장소는 대개 신사와 절이었지만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았고,

경기가 이루어지는 그때그때마다 장소가 정해졌다.

간진스모가 막부의 허락을 받았다는 증명으로 고멘코무루(蒙御免)가 적혀있는 높은 깃발을 세우고

흥행을 했다.

여기에 기인해서 현대에도 혼바쇼 반즈케(本場所番附) 한 가운데에 고멘코무루가 적혀있다.

에도 중기가 되면 스모는 사사의 기진하는 간진스모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영리를 목적으로 변모했다.

영리목적으로 하는 간진스모의 조직인 스모카이소(相撲会所)가 에도,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세 군데에 생겼다.

스모카이소가 관리하던 에도스모는 1833년부터 에코인에서 년2회 흥행이 정례화된다.

에코인은 에도 료바시(両橋) 근처에 1657년 메이레키(明歴)화재 때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에코인에서의 경기는 초기에는 무연고자 공양기부를 모으기 위한 간진스모였다.

에코인의 도효(土俵)는 흥행 시작 전에 만들고 끝나면 철거하는 임시가건물이었다.

비가 오면 흥행이 중지되는 ‘맑은 날 10일간 흥행(晴天十日之間흥행)’이었다.

정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매번 막부의 허가를 받은 후에 흥행이 가능했다.

대전 방식은 동서대전(東西対戦)이었다.

동서제란 리키시(力士)를 동서로 나누어 대전하는 방법인데 같은 편끼리는 경기하지 않았다.

임시 가건물 천막 아래에 도효가 만들어지면 관람석은 도효 바로 옆은 바닥에 바로 앉는

도마석(土間席)와 그것을 둘러싸고 2단으로 된 사지키석(桟敷席)이 만들어졌다.

리키시들은 스모카이소 소속이긴 하지만 출신지의 다이묘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에도, 오사카, 교토같은 대도시에서 스모경기를 하면서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출신지에서도

활동을 해야 했다. 메이지 시대가 되면 국체가 근대화라는 슬로건 속에 외국인을 의식하여

나체금지령, 스모무용론, 폐지론 등이 나왔으나 1884년 텐란스모(天覧相撲)는

인기회복의 계기가 되었고, 권력자 중에 스모 애호가들의 비호와 스모단체의 자구노력으로

극복하면서 근대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참고문헌 : 토토사이트https://pis-c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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